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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다시 깨달았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일상/생각 2023. 1. 9. 08:47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였던가, 어머니께서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그 시간에 TV에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을 못 본다는 사실에 가기 싫었던 기억과, 피아노를 틀릴 때 손가락을 때리시던 선생님이 기억난다. 그 집 앞마당의 빨간 석류나무와, 연습할 때마다 하나씩 지우던 사과도. 별 감흥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플룻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마 그 1년쯤 전에 리코더를 불며 만화 주제가를 불러대던 나를 보고 담임 선생님께서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표현을 해 주신 것 같다. 생각보다 플룻을 재밌게 했는데 덕분에 이를 전공하고자 하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아마도 주변에서의 인정과 칭찬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도 연습하기를 힘들어했던 걸 기억해 보면.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만난 희선이는 나에게 음악의 지평을 열어준(?) 친구다. 그 친구가 소개해 준 안성진의 라디오를 매일 들었고, 각종 락밴드의 음악들을 들었다.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게 내 인생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 결국 고등학교 2년을 마치고서야 드럼을 전공하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전학을 해 버렸으니.
피할 수 없는 사정인지, 나의 약한 의지 때문인지 음악전공을 포기하고 공부에 집중, 일반 대학에 진학했으나 졸업 후 본격적으로 임용을 준비하는 시즌에, 다시 음악의 길을 걷기로 했다. 덕분에 드럼 연습하랴, 교회 찬양팀에서 활동하랴, (당시 교회의 여러 부서에서 찬양팀 등의 활동을 한다는 것은... 주 5~6일이 기본이었다.)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 벌면서 레슨 받으랴...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발전 없이, 미래 없이, 변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일반적인 직장인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이는 서른을 훌쩍 넘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병행하길 원했기에 또 수년을 절반 정도 방황하고,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음악하고 싶은 마음'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다. 대기업은커녕, '좋은' 중소기업에도 들어갈 수 없었고 지난 시간을 방황하며 살아왔다. 지금은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직장에서 자리 잡아가며 결혼까지 했지만, 그 시절 다른 것에 집중했다면 -하는 생각을 아직도 가끔 한다. 아무튼.
그렇게 가끔 듣는 음악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는데, 코로나 재택격리로 인해 외로움을 달래던 어느날 밤. 문득 인스타그램의 짧은 동영상들을 올리다 보니, 음악에 관한 영상들이 많이 나오더라. 다양한 장르, 다양한 스타일의 짧은 영상들을 보다가 문득 다시 깨달았다. 나는 음악을 - 많이 좋아한다는 걸.
현실에 의해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물론, 현실을 위해 음악을 내려놓은 것이 잘 못된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이 있으셨다면 모르겠지만, 뒤늦게나마 직장을 선택하고 살아왔기에 부족하지만 감사한 지금의 가정을 이룰 수 있었기에. 하지만 그동안 이 마음을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것이 무언가, 씁쓸했다. 그동안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날 새벽까지 유튜브에서 노래 동영상을 찾아보며 감상에 젖는 시간을, 또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뒤로 미러두고, 음악을 좋아하는 나를 인정하고 이를 위한 시간과 기회를 조금씩 찾아보고자 한다. 해야 할 것이 많기에, 또한 상황과 환경의 제약 때문에 딱 이렇게 하겠다는 것이 쉽게 떠오르진 않지만 이 마음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한 걸음 나아간 것이리라.
꼭 무언가가 되거나,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음악을 좋아하는 이 마음이 있고, 또 이 마음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신다면, 그 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무언가 다음 스텝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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