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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퇴근길 지하철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성을 잃어버렸다.일상/일상다반사 2022. 12. 10. 00:41
대한민국 출퇴근길, 쉽지 않다. 나는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얼마 전의 지하철 파업을 겪으면서 더 심해졌다고 느끼는 것은 느낌뿐일까.
요즘 들어 출퇴근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힘들다는 생각이 많아진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한 상태로 약 한 시간 가량 이동 후 목적지에 도착하면 체력이 상당히 소진되어 있다.
지하철을 타는 순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거나 밀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 긴장감이 거의 내리는 순간까지 유지되기에 피곤한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꽉 껴서 숨쉬기 답답한 순간도 있고
또 옆 사람들과의 접촉이 신경 쓰여 마음이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내가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왜 이리 불편하고, 사람이 많은가 싶으면서도
나부터가 이런 패텬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뾰족한 수가 있겠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얼마 전 경험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성을 잃은 사건을 합리화할 수 없다.
얼마 전에 경험한 일이다. 그리고 나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다.
스스로에게도 부끄럽기에 숨기거나 미화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다음에는 나아지기 위해 분명히 이를 직시하며 반성하는 마음으로
글로 적어보고자 다짐 한다.
평소와 같이 꽉 찬 지하철의 퇴근길. 가장 환승 경쟁이 치열한 왕십리역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환승을 위한 에스컬레이터로 사람들이 마구 뛰어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날도 다름이 없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막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기 전 내 앞에 한 여학생이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앞으로 나갔는데
두세 걸음 걸어갔을까, 플랫폼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급히 뛰어가던 건강한 남자와 부딪혔다.
멀리 튕겨져 나간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몸이 살짝 떴다가 털썩 땅에 쓰러지는 정도.
상당한 충격이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여학생이 충격에 넘어지고, 부딪힌 남자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달려가던 방향으로 쭉 달려가는 모습까지만 봤다.
그렇다. 나는 그 자리를 빠르게 지나쳐 버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곧장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을 되뇌고 있었기에
분명 눈으로 그 장면을 봤고, 또 머리에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는 했지만
이것이 나의 행동에 변화를 주지는 못했다.
그 여학생이 괜찮은지, 혹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 등을 전혀 하지 못한 상태로
걸음을 재촉해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나마 스스로에게 댄 핑계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이동하느라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는 것이었다.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가 살짝 긴장을 푼 순간에도 '도와줘야 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살짝 스쳐 지나갔을 뿐
환승하려는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빨리 다음 플랫폼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환승을 완전히 마치고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하고 나서야
그때 그 여학생을 도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 그리스도인은 어디로 갔나.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그것이 마땅하다는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나를 희생해서라도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 돕는 것이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찌 되었나.
사랑을 행하겠다는, 사랑을 행할 기회를 달라는 가슴 벅찬 기도의 순간들은 어디로 갔나.
며칠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의 나의 반응이 너무 후회스럽다.
이제 더욱 처절하게 안다. 나는 태생적으로 선한 사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항상 "깨어"있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남을 도울 정도의 사람이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모습,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이 '당연한' 사람이 아니다.
그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이러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항상 깨어서, 또 의식적으로 남을 돕기 위한 노력과 주의를 기울여야 겨우 이를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는 이를 이룰 힘을, 능력을 하나님께 구한다.
바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성을 잃었다.
그냥, 사람들과 똑같았다.
하지만, 달라지리라.
자신에 대해 낙담되는 마음도 크지만, 이 모든 것을 변화의 계기로, 또 원동력으로 삼기로 다짐한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으리라.
설사 환승 지하철을 놓치고 목적지에 늦게 되더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그러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나에게 그러하신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기꺼이 돕는 사람이 되리라.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해, 그러한 내가 되기를 위해 지금부터 기도하며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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